1. 분노의 현장, 그리고 감지되는 이상한 기류
잠실 올림픽 공원 핸드볼 경기장은 지금 거대한 용광로와 같습니다. 6.3 선거 조작 논란과 잠실 제7투표소에서 벌어진 경찰의 무력 진압 소식에 분노한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가 송두리째 흔들렸다는 위기감, 그 뜨거운 열기가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치열한 분노의 현장에서 저는 무언가 기묘하고 이질적인 기류를 포착했습니다.
현장 곳곳에서는 '평화 준수', '구호 통제', '특정 피켓 사용'을 강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순수한 분노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틀 안으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과연 이 통제된 '평화'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2. '부정 선거'를 지우고 '재선거'를 입히다
시민들이 거리에 나선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부정 선거'에 대한 진상 규명입니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 실수를 지적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입법·사법·행정부라는 삼권분립의 상호 견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국민이 권력으로부터 지배받지 않아야 한다는 공화주의의 핵심인 '비지배 원칙(Non-domination)'이 처참히 짓밟힌 것에 대한 저항입니다.
특히 잠실 제7투표소에서 경찰력이 투입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국가의 세 기둥인 입법, 사법, 행정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들의 비겁한 방관이 시민들을 더욱 분노케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현장에서는 이 날카로운 '부정 선거'의 목소리를 '참정권 침해'나 '재선거'라는 훨씬 모호하고 타협적인 프레임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주현 변호사의 분석처럼, 현장에서 시민들의 구호를 검열하고 특정 단어를 강요하는 이들에게는 그럴 만한 법적 권한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시민의 목소리를 가두려는 오만한 월권행위입니다.
3. 유출된 10계명, '가두리' 전략의 실체
이러한 서사 조작의 배후에는 치밀한 '가두리 전략'이 존재합니다. 최근 유출된 단체 대화방의 '지령문'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왜곡하고 무력화할 것인지에 대한 섬뜩한 방법론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유출된 가두리 지령문 주요 내용]
- 부정 선거를 '부실 선거'로, 다시 '재선거' 순으로 의제를 축소해라.
- 선관위 해체나 특검 이야기가 나오면 '정치적 색채 제외'를 외쳐 방어하라.
- 국민이 선거 투명성을 요구하면 무조건 '재선거' 프레임으로 응대해라.
- 중도층이 떠난다는 명분으로 외부 시선을 신경 쓰게 유도하라.
- 국민의 분노를 '재선거'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어라.
- 정당에 대한 비판은 '단결'이라는 명분 아래 나중으로 미뤄라.
- 모든 책임을 오직 선관위라는 조직 하나로 국한해 축소시켜라.
- 지구전 전략: 시민들이 지쳐서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려라.
- 출구 전략: 재선거가 성사되면 "원하는 것을 해줬다"며 상황을 종료하라.
- 선거 투명성, 제도 개선, 책임 규명 논의를 뒤로 밀어 의문을 검증 없이 사라지게 하라.
이 지령문의 목적은 자명합니다. 부정 선거라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결함을 '부실한 관리'라는 단어로 희석하고, 검증 절차 없이 '재선거'라는 미봉책으로 사건을 덮어버리려는 것입니다.
4. 기묘한 공조, 개혁신당과 국민의힘의 일치된 목소리
놀랍게도 평소 날을 세우던 정치 세력들이 이 지점에서는 완벽한 공조 체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부정 선거' 목소리를 지워내는 데 있어 그들은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 개혁신당: 구자인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부정 선거가 아니라 참정권 침해로 구호를 바꿀 것"이라며, 부정 선거 아젠다를 '물타기'로 규정하고 이를 끝까지 막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준석 의원 역시 현장을 방문하며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재선거'를 주장하며 마치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또한, 김민수 최고위원은 집회 현장에서 "피켓을 하나로 통일하고 있다"고 직접 시인하며, 당에서 배부한 '참정권 침해'와 '재선거' 피켓 이외의 다른 목소리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앞장서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언어를 검열하고 '참정권 침해'라는 정제된 용어로 분노의 본질을 희석하는 이 기묘한 광경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5. 외부 세력 침투 의혹과 '엔추파도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군중을 통제하는 인물들의 정체입니다. 마이크로 특정 구호를 강요하고 행동을 지시하는 이들 중에는 과거 북한과 김정은을 찬양해온 '대진년' 연루 의혹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문신을 가득 새긴 남성들이 현장을 돌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마이크로 공지를 주도하는 모습은 평범한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들처럼 시민의 자발적인 에너지를 가로채 기득권이나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게 서사를 조작하는 자들을 우리는 **'엔추파도스(Enchufados)'**라고 불러야 합니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모인 시민들 사이에 북한 찬양 단체가 침투하여 '부정 선거'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억누르고 있다는 이 역설적인 상황은 이번 사태의 배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시사합니다.
6. 본질을 잃지 않는 시민의 눈이 필요한 때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시 투표하는 '재선거'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지난 선거 과정 전반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시스템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근본적인 검증입니다. '재선거'라는 프레임은 그 검증의 기회를 박탈하고, 무너진 민주주의를 대충 수리해서 넘어가려는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함정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목소리를 바꾸려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모였는지 다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다시 하기'가 아니라, 훼손된 헌법 질서의 회복과 투명한 진실의 확인입니다. 기득권이 내미는 '재선거'라는 타협안에 속아 '진실'을 묻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깨어있는 시민의 눈만이 이 기묘한 조작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습니다.
기득권이 '재선거'로 진실을 묻으려 할 때, 시민은 타협이 아닌 진실을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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